Title.전인권, '남자의 탄생' 그리고 소소한 생각들.

『남자의 탄생』을 읽고 한국 여성들에 대해, 혹은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너무도 식상할 듯 하여 몇 번을 망설였다. 다른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끙끙대기를 몇 시간, 그러나 결국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나는 예전부터 '남녀차별' 혹은 '남녀평등', '여성'에 대한 생각이 많은 편이었다. 그것은 딸만 셋인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남자의 탄생』이라는 제목과, 그 아래 달려있는 부제에서 '아, 우리나라 남성들의 권위주의적인 면에 대한 이야기겠구나.'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흥미가 갔던 것은 그래서였다.

어려서 명절 때마다,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자주 들었던 말은 '여자 직업으로는 선생이 최고야.'라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굉장히 듣기 싫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부터도 아마 소위 '성차별적 발언'을 싫어했었던 것 같다. 집안 내에서 '남아'와 '여아'를 차별하고 있는 생활 풍습, 혹은 태도도 현재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는 꽤나 큰 공헌을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되는 할머니와 작은 고모의 대화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은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집안 사정에 관한 얘기야 차치하고서라도, '아들'을 낳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한 대화. 차마 그 앞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어 그저 입다물고 있었지만, 가끔 그 때가 생각나면, '왜 그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아마 그랬더라면, '버릇없고, 맹랑한 아이'로 낙인 찍혔을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돌아다니는 블로그들에는 '남녀차별' 혹은 '성적 역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몇 달 전 말이 많았던 <남자들을 위한 밤길 에티켓>이라는 포스트다. 모 대학 여학생 총 학생회에서 붙였던 자보의 내용이라고 하는데, 이 포스트에 대해 남성 블로거는 그들 나름대로, 여성 블로거들은 또한 그녀들 나름대로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것은 이기주의일 뿐이다.', '여성들이 애꿎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다.', '요즘은 남자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 등의 의견이 분분했다.

모두들 나름대로 수긍이 가는 말들이었다. 다만, '왜 저런 자보가 붙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생각들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자보의 내용이 좀 과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은 ―나조차도 좀 심하다 싶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인정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왜 저런 자보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에, 또한 슬펐다. 그저 표면적으로만 쓰여져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분개하고, 저것은 역차별이고 이기주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은 힘겹다고 종종 느낀다. 그것은 그저 별 의미 없이 보이는 TV 드라마를 통해서도,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나의 어머니를 보면서도 쉽사리 깨달을 수 있다. 요새는 너도나도 한다는 성형수술에서도, 하다 못해 흘러가는 유행가 가사에서도, 영화의 한 장면에서조차도 그 자취는 선명하게 찾을 수 있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정년은 무려 '26세'였고, 여성들에 대한 '성희롱'이 범죄라는 것이 판결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여성의, 어머니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그녀들의 가사노동은 무시 받기 일쑤다. 결혼을 하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다반사요, 요즘엔 맞벌이 부부도 많이 늘었다지만, 꽤 많은 공부를 하고도 결혼하자마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도 많다. 극단적인 예로, 남성들이 여러 여자를 경험했다는 것은 ―성적인 의미로― 별로 흉이 되지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아직도 '순결'을 요구하는 것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런 모습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은, 때로는 그녀들을 '성녀(聖女)'로 보이게 할 만큼 아름답다 ―물론 거기에는 그녀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는 바탕이 필요하다―.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본인의 행복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혼전 순결'이라는 것 또한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것일 때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어릴 때부터, 로봇이 그려져 있는 스케치북은 남자꺼, 마루인형은 여자애들 장난감, 파란색은 남자색, 분홍색은 여자색 등의 관념 등이 주입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의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저런 관념들은 아주 당연시 되는 것들이었으니까. 거기서부터 그어진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쉽게 접할 수 있는 TV프로그램, 부모 등에 의해 서서히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아니,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차별'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로 나오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대한민국에서 '성공하는 여성',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이 되는 것도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최근 지하철 칸칸이 붙어있는 모 영어학원 광고를 보며 굉장히 기분이 나빠진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각각 남자직원, 여자직원의 사진과, 그들의 생각이 쓰여져 있는 것이었는데, 남자직원은 '업무를 잘 처리한다.'는 시각으로 기술된 반면, 여자직원은 '매너 좋고, 예쁘다.'라는 시각으로 쓰여졌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광고 한 조각에서도 성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사회가 '소수의 목소리'에 인색하다는 것도 문제다. 아무리 '여성들의 권리를 돌려달라'고 외쳐도, 대답이 없는 것이 일쑤이기 때문에. 개방적인 시각, 타인까지도 품을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할 텐데, 비단 여성에 관한 부분이 아니라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시각도 아직 편협하기 짝이 없다.

가끔 친구들에게 '난 결혼이 싫어.'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결혼 제도'가 싫다는 것이지만. 최근에야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성 한 사람의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결혼은, '무덤'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가사분담도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할 듯 하다.

그러나 부끄러운 것은, 앞서 내가 써놓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에 대하여 나 자신도 당당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남들과 다름없는 '대한민국의 여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편협한 가치관 속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입으로는, 의식적으로 하는 생각들로는 여성의 권리를 찾아야한다고 외치지만, 행동은, 무의식적인 생각과 사고는 그렇게 되어주지 않을 때가 셀 수 없이 많다. 힘든 일은 당연히 남자가 해 줬으면 좋겠고, 나는 여자니까 먼저 배려해주길 바라고,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군.'하는 자괴감. 생각과 행동이 언제나 일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가슴이 쓰리다.

이러한 괴리는 실상 어릴 때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차별'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말은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왔지만, 주위에서 보이는 많은 것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은 '변화와 노력'의 필요라는 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식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최근에 시행된 소위 '성매매 특별법'에서도 명확히 볼 수 있다. 법이 시행되자마자 인터넷의 각 토론방들은 떠들썩했고,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업주들이, 아가씨들이 못살겠다고 난리다. 결국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마초이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라는 외침 속에 깔려 있는 것은 '여성의 인권은 무시해도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레이디 경향》이라는 잡지에 나온 "'소녀'를 버리고 '여자'가 되라"는 기사를 보았다. 성공하는 여성이 되기 위해서 '소녀'를 버리라는 것인데, 저지르기 위한 '소녀적 실수'들이 10가지 정도 나열되어 있었다. 아직은 직장을 다닌다는 경험을 하지 못했지만, 꽤나 공감 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소녀적 습관을 남성들이 더 원한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소녀적 실수는 직장의 '꽃'이 되기를 바라는 여성들에게, 혹은 원하지 않지만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 택해지는 방법들이다. 그 항목들을 지키면 좀 만만하게 보이고,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편한 여직원'이 되는 반면, 자신의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고, 당당하게 일하는 여성은 남성 직원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다. 문제는, 남성들이 소녀다움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 결국 인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 소녀처럼 살아도 욕을 먹고,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되어도 욕을 먹는 폐쇄적 사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느껴지는 것은 숨막힐 듯한 답답함, 나 자신에 대한 회의, 남성 우월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한 사회에의 분노. 혼자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매우 작다. 그리고 그런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남들로부터 듣게될 비난도, 따가운 시선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 절절히 느끼고 있는 것은 '용기의 부족'.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 사회의 시선이, 다른 사람의 시선이 너무나도 많이 의식된다는 것.

인간관계는 혼자 맺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 또한 혼자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호간의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타협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일방적으로 희생하기만 하는 관계는, 이제는 조금씩 물러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여성의 권익이 상승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또한 필요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나란히 설 수 있는 사회는 그 후에야 이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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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니 뭔가 횡설수설하니 말도 안되는 듯한 느낌이다.
어차피, 레포트로 내는 글이나, 포스팅하는 글이나 손가는 대로 쓰고 퇴고도 안하는 인간이니, 나중에라도 고칠리야 만무하겠으나=_=; 상당히 면상팔린다, 이거.


by SugarBlues | 2004/11/29 02:01 | 독서클럽 | 트랙백(2)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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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MAGIN at 2004/11/29 10:23
앗.글 너무너무 잘쓰시는데요(엄지를 들어올린다)여러모로 공감가는 글이었어요. 확실히, 어떤 문제이든..대부분의 경우 화두가 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인 겁니다.. 동등하게, 솔직하게, 비틀림없이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줄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요?(이런게사람 사는 곳에 존재할 수나 있을지;;)
++'소녀를 버리고 여자가 되라'를 보고 나니..저도 아직 멀었군요. (한숨)
Commented by SugarBlues at 2004/11/29 20:33
AMAGIN 님 /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요즘은 어떤 얘기를 하든 결론은 '커뮤니케이션'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_=; 시각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는데- 쉽지않네요.
'소녀를 버리고 여자가 되는 것'은 어찌되었든 쉬운 일은 아니예요. 괴리도 너무 클 뿐더러-_-; '여자'로 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Commented by 아르 at 2005/01/03 00:53
보다 반가워서 전에 쓴 글이랑 이었는데, 지금 보니 저 글을 쓸 당시에는 생각이 참 부족했구나, 그래서 결국 껍데기뿐인 글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갑니다.
Commented by SugarBlues at 2005/01/03 01:23
아르 님 / 트랙백 잘 받았습니다. 뭐든지 나중에 보면 아쉬움이 남지요. 저도 제 글을 보면 그런걸요. 읽고 나서 어머니께 읽어보라고 드렸는데 오늘보니 방 한켠에 있더군요. 음; 분명히 읽고 나면 공감갈 글인데=_=;
Commented by 개울 at 2005/02/08 12:30
요즘 보니깐 트랙백도 쌍방이 같이 거는 경우가 많던데... 저도 트랙백 걸께요~ ^^
Commented by SugarBlues at 2005/02/11 15:00
개울 님 / 네 ^-^ 트랙백 잘 받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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